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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4:1~5 “우리 믿는 자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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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1-10-15 09:08    조회 2,428    댓글 0  
 
고전4:1~5  “우리 믿는 자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2021.10.17.
노인과 소년이 나란히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노인이 소년에게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었고 소년은 ‘멀리 간다’고 대답을 하면서 ‘할아버지는 어디까지 가시느냐’고 묻습니다. 할아버지는 ‘다음 고개 너머까지만 가면 되지’라고 대답을 하시면서 ‘네 망태 속엔 무엇이 들어 있느냐’고 물으시자 소년은 ‘꿈이 들어 있지요’라고 대답을 합니다. 이어 소년은 ‘할아버지 망태 속엔 무엇이 들어있나요’ 할아버지 대답이 ‘이젠 아무 것도 없지’ 하시면서 ‘네 망태 안에 있는 꿈은 무거운 것이냐’ 물으시니 소년이 ‘네 적잖이 무겁네요’ 이 노인과 소년의 대화에서 여기 노인은 꿈 많던 소년의 때를 다 보내고 더 이상 세상에 기대할 것이 없는 한 고개만 넘으면 끝나가는 종말을 맞아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노인처럼 마지막 고개를 남긴 종말의 때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며 신앙인으로서 지켜야 할 종말론적 윤리의식이 뭔지를 깨닫고자 합니다.

1절을 볼까요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성도들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을 가지라, 어떤 시각이랍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일꾼’이고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는 거지요 왜 그런지 고전3:23절에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는 우리의 원래 주인이 그리스도라는 거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까 그리스도에 속한 예수 믿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이 주인이라는 거지요 여기 ‘마땅히’ 헬라어 ‘후토스’는 그러므로, 또는 그런즉 이라는 접속사거든요 그런즉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성도들을 볼 때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보는 시각이 있어야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일꾼’ 헬라어 ‘휘페레타스’는 ‘~아래에 노를 젓는 사람’이란 의미로 뭡니까? ‘배 밑창에서 노 젓는 노예’라는 건데 배 밑창에서 노 젓는 노예로 시작되면 늙어 죽을 때까지 충성을 다하다가 죽어서야 나왔다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노 젓는 종들로서 죽기까지 충성을 다해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거지요
그리고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에서 ‘비밀’ 헬라어 ‘뮈스테리온’은 예수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비로소 공개되고 계시된 비밀이라는 거거든요. 계시된 그 비밀이 뭡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라는 거고 하나님이 성령으로 처녀 마리아에게 아들로 잉태되셨다는 거고 이렇듯 죄 없는 자로 오셨기에 그리스도로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사 대속을 완성하셨다는 이 비밀이 세상에 밝히 드러나게 된 거지요 이 계시된 비밀을 맡은 자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성도들인데 여기 ‘맡은 자’ 헬라어 ‘오이코노무스’는 ‘집을 관리하는 자’라는 의미니까 사람들이 우리를 하나님의 ‘청지기’로 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의 자세가 뭐랍니까? 2절이지요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여기 ‘구할 것’ 헬라어 ‘제테이타이’는 ‘찾는다’는 의미의 현재형 단어거든요 뭘 현재, 지금 찾아야한다는 겁니까? 충성이라는 거지요 ‘충성’ 헬라어 ‘피스토스’는 믿을 만한 또는 신실함이란 의미로 하나님 앞에 서는 순간까지 믿을만하고 신실한 ‘충성’된 모습이 계속되고 지속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청지기는 세상적인 것들에 능통하고 우월하기 보다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셔서 이루신 드러난 비밀인 구원의 복음에 대해 맡은 자로서 믿을 만하고 신실하게 충성하는 것이라는 거지요 그리고 이 평가는 고린도교회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잖아요 하나님 아버지가 평가하신다는 거고 마찬가지로 우리의 평가에 대해서도 교회 즉 성도들이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시라는 거지요 왜요? 우리는 교회의 한 일원이지만 실질적 주인이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좋은 평가 받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4절을 볼까요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여기 ‘판단 받는 것’ 헬라어 ‘아나크리도’는 ‘매우 강하게 마치 최후 심판 때처럼 엄격하게 심판 받는’ 의미의 수동태 단어라는 거지요 사도바울이 누구에게 이렇듯 강하게 ‘아나크리도’ 심판 받았답니까? 고린도교회 성도들 또는 다른 사람들이라는 건데 판단을 받는 바울은 어떤 입장이었답니까? ‘매우 작은 일이라’고 여겼다는 거지요 왜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기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자신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만 자신을 판단하신다는 거 아닙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잖아요 성도가 성도를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 분명한 이유는 성도들의 주인은 그리스도라는 거지요 우리 자신의 충성여부에 대한 판단은 오직 주인이신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면서 사람의 소리에 상처받지 않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런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뭘 고백하고 있습니까?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않는다.’는 거 아닙니까? 그 이유를 말하지요 우리 개역개정에선 4절에 ‘내가 자책할’ 앞에 헬라어 ‘가르’ ‘왜냐하면’을 해석하지 않았다는 건데 재해석하면 ‘왜냐하면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뭡니까? 무죄가 아닌 자신의 무지인 양심에 거리낄 일을 하지 않았다는 거지요 그러면서 그 다음 뭐랍니까? 그렇다고 의롭다함을 얻지 못한다는 겁니다. 의롭다함은 얻는 것은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라 뭡니까?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지는 은혜라는 걸 말씀하고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기 ‘심판하시는 이는 주시니라’에서‘주’ 헬라어 ‘퀴리오스’거든요 롬2:16절에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은밀한 것까지 판단하시는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심을 기억하고 우리 자신도 우리 자신을 판단치 말고 더더욱 성도들 간에도 판단하지 않으므로 주님의 권한을 월권하지 않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절을 볼까요.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왜 우리가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까? 정확지 않은 인간의 판단, 양심의 판단, 인간 지혜에 의한 판단과는 달리 인간을 매우 정확하게 판단하시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반드시 심판주로 오신다는 거잖아요 여기 ‘때’ 헬라어 ‘카이루’는 ‘약속된 시간’이라는 의미거든요 그러니까 ‘때’ ‘카이루’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심판주로 오시는 ‘최후심판의 날’인 거지요 그렇습니다. 재림과 심판은 함께 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재림과 심판을 의식하는 종말론적 시각을 가진 성도들은 자연 종말론적 윤리의식을 가지고 산다는 건데 그것이 뭡니까? 주님이 곧 오실 텐데 용서 못할 것이 무엇이며 원수질 일은 무엇인가 욕심 낼 것은 뭐며 너 잘났다 나 잘났다가 무슨 소용인가 원수라도 사랑하라 하셨는데 사랑치 못할 것은 무엇인가 나도 똑같은데 내가 누굴 이야기 할 것인가 주님 예수 곧 오신다는 종말의 때 이 같은 종말적 윤리의식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성숙되어져야 할 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기 ‘판단하지’ 헬라어 ‘크리네테’거든요 여기에 헬라어 ‘메’가 함께 해서 판다하지 말라가 되었다는 건데 ‘메 크리네테’는 현재 명령형이라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계속해서 조급하고 경솔하게 남을 평가하지 말라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종말론적 윤리의식이 없었구나 그래서 쉽게 판단하는 일에 빠져있었구나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판단하지 말라 ‘메 크리네테’라고 명령하고 있음을 본다는 거지요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가 왕으로서 재판장으로서 오실 때는 완전하고 최종적이며 확정적이고 엄중한 판결을 내리실 것이기 때문임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미궁에 빠진 채로 역사에 묻힌 모든 사건에 감추인 죄인들이 드러나게 될 겁입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의 성급하고 조급하게 내렸던 판단들이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어떻습니까?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는 거지요 시편기자도 시139:12절에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뭡니까? 이는 하나님의 신적성품으로 전지성이잖아요. 이 신적성품으로 판단하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않는다는 종말적 윤리의식을 가지고 오직 우리가 할 일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배 밑창에서 배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충성하는 종처럼 그리고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로 현재를 충성을 다함으로 주께로 칭찬 듣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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