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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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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66:17절 “하나님을 알고부터 찬송하는 입술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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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1-09-30 16:58    조회 2,410    댓글 0  
 
시66:17절 “하나님을 알고부터 찬송하는 입술이 되었습니다” 2021.10.3.
가수들이 노래를 직접 부르지 않고 이미 녹음된 것으로 노래에 맞춰서 입동작만하면서 실제로 노래하는 것처럼 시늉만 하는 것을 립싱크라고 하잖아요 지난 몇 해 전에 사랑의 쌀을 나누기 위해 가수를 초청해서 집회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 가수가 립싱크를 하더라구요. 아무리 잘 맞춘다고 하지만 약간의 맞지 않는 부분을 보면서 립싱크구나 하는 생각에 내심 얼마나 실망이 되던지 우리가 예수 믿고 달라진 것이 뭔가요? 날 구원하신 예수를 립싱크가 아닌 마음과 힘을 다해 찬송하는 자가 된 걸 믿습니다.

그러면 찬양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되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마음으로 표현하는 것이 찬양이거든요 본문을 볼까요 “내가 나의 입으로 그에게 부르짖으며 나의 혀로 높이 찬송하였도다.” 여기 ‘그에게’ 히브리어 ‘엘라이우’가 원문에서는 먼저 나온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부르짖는 행위보다 자신이 부르짖는 대상을 강조하고 있다는 거거든요 뭡니까? 본문의 시편기자는 참으로 어렵고 힘든 환난의 때 사람을 찾기보다는 먼저 하나님을 찾아 도움을 구했다는 겁니다. 도움을 위해 부르짖었다는 거지요 여기 ‘부르짖다’ ‘카라티’는 ‘울며 소리 내어 매어 달렸다’는 건데 하나님께 부르짖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향한 찬송을 잊지 않고 있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어떤 결말이 났습니까? 20절에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그의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도 아니하셨도다.”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잊지 않고 드렸던 찬송은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거니까 찬송이 참으로 큰 능력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찬송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찬양해야 할까요?
1) 새 노래로 찬양이랍니다. 시149:1절에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할지어다.” 여기 ‘할렐루야’는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말인데 여호와를 찬양 하되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잖아요. 여기 ‘새 노래’ 히브리어 ‘쉬르 하다쉬’는 세 가지 의미로 말 그대로 새로운 노래이고 또 마음을 새롭게 하여 전심으로 최고로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의미라는 거지요 또 다른 하나는 현재와 미래에 걸쳐서 감사와 감격 또한 날마다 새롭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되 바로 이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는 거지요 여기 ‘찬양할 지어다’ 히브리어 ‘테힐라토’는 ‘그에 대해 찬양하라’는 의미로 어디서? 성도들이 모인 곳에서지요 ‘성도’ 히브리어 ‘하씨딤’은 ‘거룩한’ ‘진실한’ ‘신앙심이 깊은’이니까 이 성도들이 모이면 그 곳에선 새 노래로 우리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찬양합니다. 엡5:19절에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어둠에 속한 자들은 어떻습니까? 술 취하여 방탕하여 떠들잖아요. 그러나 빛에 속한 성도들은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주께 노래하며 찬송한다는 거거든요 여기 ‘시’ 헬라어 ‘프살모스’ ‘문지르다’니까 현악기를 뜻한다는 거고 악기를 연주하면서 찬송하라는 거지요 그리고 ‘찬송’ 헬라어 ‘휨노스’는 이방종교에서 신을 노래할 때 ‘휨노스’라고 했다는 건데 신약시대에 와서 이 ‘휨노스’를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로 빌려서 쓰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구약시대에 시로 지어 악기를 동원해서 하나님을 노래하고 신약시대에 세상에 신을 노래하던 것을 빌려와서 하나님을 노래했다는 건데 세상과 인간의 흥을 위한 노래가 아닌 하나님께만 올려지는 ‘신령한 노래’로 찬송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뭐랍니까? 이사야서43:21절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렇습니다. 새 노래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지으심을 받은 이들이 우리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어떻게 찬양하여야 할까요?
3)소고를 들고 춤을 추며 찬양합니다. 시149:3절에 “춤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지어다.” 여기 ‘춤’ 히브리어 ‘베마홀’은 최고의 기쁨과 열정을 나타내는 표현이라는 거거든요 그리고 소고와 수금으로랍니다. ‘소고’ 히브리어 ‘뻬토프’는 챔버린이나 작은 북을 의미하는 악기이고 ‘수금’ 히브리어 ‘킨노르’는 매우 오래된 현악기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깨닫는 것은 찬양은 열과 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드리되 일상생활에서도 성전에서 예배 중에도 모든 삶 전체가 찬양이어야 한다는 거잖아요 새 노래로 시, 악기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일상에서 예배에서 그리고 찬양하고 춤을 추며 또 어떻게 찬양해야 할까요?
4)기뻐하며 큰 소리로 찬양합니다. 눅19:37절에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예수님의 제자들이지요 저들이 본 능한 일이 뭡니까?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흘 만에 살아서 나온 기적이었거든요 이 모습을 본 이스라엘백성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그 예수님이 평화의 왕으로 예루살렘 입성을 보면서 저들은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 찬양을 했다는 거지요. 하나님을 어떻게 찬양한다고요? 새 노래로 시, 악기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또 춤을 추며 기쁨과 큰 소리로 찬양하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올릴 찬양인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무엇을 찬양해야 하겠습니까?
시8:1절에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뭡니까?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찬양하라는 겁니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어떻습니까?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는 건데 사람도 새도 모든 짐승의 새끼도 어미들과 부모가 먹을 것을 부지런히 공급함으로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지요 그러나 ‘스스로 계신 자’란 의미의 주의 이름 ‘여호와’는 아니지요 스스로 존재하시며 오히려 다른 것들을 존재케 하시는 창조주 여호와로 인하여 창조된 온 땅의 모습을 보면서 여호와라는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를 찬양합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서 어떻게 변했나요? 고후5: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를 예수 안에서 새롭게 만드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아름답게 하신 ‘여호와’를 마땅히 찬양해야 함을 믿습니다.
또 하나님의 무엇을 찬양합니까? 왕상8:56절에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그가 말씀하신 대로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태평을 주셨으니 그 종 모세를 통하여 무릇 말씀하신 그 모든 좋은 약속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아니함이 없도다.” 여기 ‘여호와를 찬송하라’ 히브리어 ‘빠루크 예흐와’인데 ‘빠루크’는 ‘무릎을 꿇다’ 또는 ‘축복하다’라는 의미로 이 빠루크가 사람을 향해 사용할 때는 축복하다가 되지만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 사용할 때는 찬송하다가 된다는 거거든요 그런데 왜 찬양합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태평을 주셨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여기 태평 히브리어 ‘메누하’는 평강 또는 안식을 의미한다는 거지요 요14: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없이하시고 대신 당신의 평안으로 채워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뭡니까? 모든 좋은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는 거지요 언약성취의 완전성이라는 거지요 그러므로 주께서 주시는 평안과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 그 말씀대로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하나님의 무엇을 찬양해야 합니까? 시42:11절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여기 시편기자는 널 보니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고 주변에서 사람들이 비난하고 비웃더라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편기자는 스스로에게 다짐하기를 ‘내 영혼아 어째서 낙심하느냐 어째서 불안해하느냐 내 영혼아 하나님께 소망을 둬 그러면 하나님이 나타나 도우실 거야’라고 말이지요. 지금 시편기자는 이미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도우실 것을 바라보며 내 하나님을 찬송하겠답니다. 하나님이 이런 사람을 어찌 사랑하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즐거움과 기쁨을 표현하기를 새 노래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악기를 사용하며 춤으로 그리고 큰 소리로 날 새롭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도우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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